영성향기

하느님 말씀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이유

코람데오 요세비 2009. 9. 5. 14:38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고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하느님은 영적으로 말씀 하신다. 우리는 그걸 육적으로 들으려 하니 듣지 못한다.

하느님을 볼 수 없는 이유

하느님은 무한하고 너무 크신 분이기에 볼 수 없다. 사물은 너무 크거나 가까이에 있으면 볼 수 없듯이 태양도 그 크기에서 지구와 비교할 수 없지만 적당히 떨어져 있기에 볼 수 있다. 하느님은 너무 크신 분, 그리고 너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하느님이 사랑 하지 않는다.

하느님 사랑은 티를 내지 않는다. 어머니 사랑은 사랑 아닌것이 없다. 언제나 자식을 보살피신다.

늘 옆에 있기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한 동안 안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그 때에야 어머니 사랑을 알 수 있듯이 하느님 사랑은 항상 옆에 있기에 사랑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보고 느끼려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교리서에서와 같이 칠죄종(七罪宗) 첫번이 교만이다.

교만은 단단한 마음이다. 교만은 왜 단단한가? 교만은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집중적이다. 교만할수록 자기가 강하여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이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자기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듣지 않는다. 하느님 말씀도 듣지 않는다,

하느님 말씀을 잘 들으려면,

첫째 수없이 자기 안에서 솟구치는 주장을 침묵시켜야 한다. 언어의 침묵이전에 마음의 침묵이 중요하다.

마찮가지로 하느님과의 대화에서도 말하고 듣기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혼자 줄줄이 제 이야기만 하고 나온다.

내 이야기만 할뿐 들으려 하지 않는다.

둘째 욕심과 집착을 가라앉혀야 한다. 욕심과 집착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욕심은 우리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욕심은 집착하게 한다. 칩착은 달라 붙음이다. 소유욕이건 건강이건 모든욕은 거기에만 집중하여 그것밖에 안 보이게 되어있다.

욕구의 결핍을 충족시키려 말고 하느님이 주시건 가져가시건, 가장 좋은것 주시리라는 마음으로 있을 때 근심걱정이 없어진다. 조금 "더" 를 바라는 욕구를 잠식시킬 때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소리를 듣게 된다.

셋째 사랑을 하면 잘 듣게 된다. 그 까닭은 사랑하는 만큼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초는 겸손과 가난이다. 가난은 물질의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이다. 가난은 소유욕의 포기, 소유의 내려 놓음이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인은 기도중에 분심이 들었다는 이유로 자기가 직접만든 잔을 가차없이 불속에 던져 버렸다.

주님을 따름에 이렇게 과격함이 있었다. 우리의 복음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과격함은 필요하다.

끊어버리고,

던져버리고,

그리고

마음을 쏟으라!

하느님께로.....

'영성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성가와 개신교 찬송가  (0) 2010.09.08
성모영보(주님 탄생 예고)  (0) 2009.10.07
성 김대건신부님의 옥중서간  (0) 2009.09.04
가두 선교  (0) 2009.08.29
칠죄종(七罪宗)과 칠극(七克)  (0) 200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