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3

고양현

고양현(高陽縣) 고구려의 달을성현(達乙省縣)인데,신라가 고봉(高烽)으로 고쳐서교하군(交河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김부식(金富軾)이 이르기를, “한씨(漢氏)의 아름다운 딸이 높은 산머리[山頭]에서 봉화(烽火)를 피우고 고구려의 안장왕(安藏王)을 맞은 곳이므로 고봉(高烽)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 행주(幸州)는고구려의 개백현(皆伯縣)인데,신라가 우왕(遇王)이라 고쳐서한양군(漢陽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혹은 왕봉현(王逢縣)이라고도 한다.【김부식(金富軾)이 이르기를, “한씨(漢氏)의 아름다운 딸이 안장왕(安藏王)을 맞은 곳이므로 이름을 왕봉(王逢)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 고려가 행주(幸州)로 고쳤다.【별호(別號)는 덕양(德陽)이라 하는데, 순화(淳化) 때에 정한 것이다. 】위의 2현(縣)..

옛날에 옛날에 2014.10.02

웅어와 행호 관어

웅어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나오는 물고기이지만, 봄철 산란을 위해 한강으로 오를 때가 가장 맛있다 한다. 조선 시대에는 강변에 웅어소(葦魚所)를 두어 하강 하류에서 잡히는 웅어를 궁중에 진상하였다. 웅어는 궁중 조달 물품으로서 맛도 있지만, 철에 따라서는 제사상에도 정찬으로 오르는 중요한 품목이었다(澤堂別集제16권, 雜著, 祭饌). 위어소는 사옹원(司饔院)의 한 분장(分掌)이며, 웅어의 명산지인 한강 하류 고양(高陽)에 있었다. 광주(廣州)의 사기소(砂器所)와 양천(陽川)의 위어소(葦魚所), 안산(安山)의 소어소(蘇魚所 밴댕이를 잡아 진공하던 곳) 등은 고려 때부터 있었던 명칭이다(성호사설 제15권, 人事門). 한강에 위어소를 두어 웅어잡이를 관리했다 하지만, 나라에서 직접 웅어를 잡은 것은 아니었고,..

옛날에 옛날에 2014.01.13

겸재 정선의 행주

지금의 행주산성 뒤 덕양산 기슭 행호강변에 세워진 귀래정의 모습. 덕양산은 미점을 찍어 송림으로 둘러싸인 정취를 표현하였다. 덕양산 줄기 끝 상봉 밑에 세워진 낙건정을 그린 그림. 한강의 상류와 하류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행호에서 고기잡이를 보다. 현 고양시 덕양구 덕양산 자락의 한강은 행호로 불리며 고관대작들의 별장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왼쪽이 낙건정 가운데가 장밀헌 오른쪽이 귀래정. 歸來亭(귀래정, 조선중기 경기감사, 형조판서 등의 벼슬에 오른 김광욱의 별서)과 蔣密軒(장밀헌, 조선후기 이조판서, 우.좌의정을 두루 지낸 송인명의 별서 ) 그리고 樂健亭(낙건정, 조선후기 병조.호조판서, 좌참찬을 지낸 김동필의 별서)이 덕양산 자락과 어울려 자태를 뽐낸다. 경교 명승첩 겸재 박물관에 소장

옛날에 옛날에 201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