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조상의 묘에서 휴대폰이오다.

코람데오 요세비 2006. 7. 1. 13:25

한국 사람들은 조상의 묘(墓) 자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명 정치인의 묘 자리 이장은 뉴스거리로 취급될 정도이다. 몇 년 전 DJ 선친 묘를 용인으로 옮겼을 때에도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JP 선친 묘의 이장(移葬)도 역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며칠 전에는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부친 묘 이장이 각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조상의 묘 이장이 왜 사회적인 뉴스로 취급되는 것인가.


이 독특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을 알아야 한다. 한국인의 전통적 사생관에 의하면 사람은 육체가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혼백(魂魄)의 해체였다. 죽는 순간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백(魄)은 뼈에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죽은 후에도 영혼의 50%가 뼈에 남아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죽은 자의 뼈가 묻혀 있는 묘 자리는 나머지 50%의 영혼, 즉 백이 거주하는 집이 된다. 그래서 묘 자리를 음택(陰宅)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주택개념에는 산 사람이 거주하는 양택(陽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거주하는 음택도 역시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를 놓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생과 사를 양과 음의 관계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음과 양은 밤과 낮처럼 서로 돌고 도는 관계이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이기도 하다. 물고 물린다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상의 음택을 명당에다 쓰면 산 사람인 후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비명당(非明堂)에다 쓰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그 연결고리의 핵심은 뼈이다. 뼈는 조상과 후손을 연결하는 휴대폰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명당에다 묘를 쓰면 반가운 전화가 오지만, 비명당에다 묘를 쓰면 골치 아픈 전화가 온다. 그러나 명당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에서는 대부분 비명당에 묘를 쓸 확률이 높다. 비명당에 들어갈 바에는 차라리 휴대폰을 폭파할 수밖에 없다. 골치 아픈 전화는 안 받는 것이 좋다. 휴대폰 폭파는 화장(火葬)이다. 화장은 무해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