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코람데오 요세비 2006. 7. 8. 15:07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인복·마리아


교회에 입문하여 배운 기도문 중애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 기도문 구절이, 성모송의

마지막 부분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입니다. "저희 죽을

때에"라 하였으니 "나"를 위한 기도문만이 결코 아니고 나보다 먼저 간, 먼저 갈, 나보다

후에 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두루 기도하는 것이어서 좋습니다. 묵주신공의 그 많고

많은 성모송마다에서 우리는 인류 모두와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간 생애에서 인간이 감당하여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입니다. 태어남에는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지 못하니, 죽음만이그 완성도를 위하여 인간 자신이 의지적으로

해야할 부분을 지닙니다. 성모송을 많이 기도하듯, 이옷 샤람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면서 마태오 복음 25장을 실천하든, 미사 참례를 자주 하든, 운동을 많이 하여 신체

단련을 하든, 인간이 자신의 건강과 죽음의 완성도를 위하여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지닙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간 자신이 결정짓는 것은 아닐니다. 하느님의 손바닥에 인간

생사는 놓여있고 인간은 단지 그 죽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삶의 순간 순간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되도록 노력하며 그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하면서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우리는 누구나 다 죽습니다. 흔자서, 모든 것을

다 놓아두고, 언제일지 모르면서, 그저 갑자기 어느 날 홀로 갑니다. 그래서 어머니 자궁에

잉태된 순간부터, 생명만이 아니라 죽음이 함께 자라고, 손목에서 뛰는 맥박소리는 우리

무덤을 파는 삽질소리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 부분는 마주 앉아 잠시 죽음과 유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잠시 침묵 후 이헝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먼저

가야지‥‥‥ 나늘 그때 그 "그래도"가 지니는 함축 의미가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일까" "아무리 아무리 죽기 싫어도, 아무리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라는

뜻일까" 우리들 모두의 말이 될 수 있는 그 "아무리"라는 어휘에는 너무도 많고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집안 어른이 며칠 전에 작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양배추를 많이 먹으면 신체 건강하여

장수한다고 호언장담하시며 하루에 양배추 반쪽을 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맏형님은

양배추를 안 드시면서도 80을 넘기도록 살아 계신데, 막내인 그분은 60을 겨우 넘기고

타계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이 언제 일지를 모릅니다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

그저 지성을 다하여 남은 시간의 매분 매초를 "사랑만 하며 베풀고 나누며 살 일"이고,

거기에 곁들여 우리 어머님에게 "이제와 저회 죽을 때에‥‥빌어주소서" 하고 기도할 뿐인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그 으뜸의 것이 장수요 영생입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권세보다

장수와 영생이 그 으뜸입니다. 그러나 장수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99세를 살면 실컷

살았다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00살을 넘기고 싶을 것입니다. 그렁다면 장수의

길이 무엇입니까" 이미 가신 남편. 흑은 이미 가신 아내를 지금 사랑하십니까" 그분이

남기고 간 추억을 생각하며 자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기 그분이 함께

살아있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육신이 남아있는 그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사랑하고 추억할 아무것도 우리 가슴에 남겨져 있지 않은 냉혹함, 그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100년 이상 살지 못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누구에게나 삶은 짧게 느껴질 뿐이고,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바짝 바짝 다가오는데, 장수 영생의 개념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 속에 남기고 가는 나눔과 추억에 비례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네스트 베커는 "인간은

아름다운 추억을 유산으로 남김으로써 이웃의 가슴 속에 살아남는다" 했습니다.


이 세상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간 분으로, 예수님보다 더 크신 어른으로 누가

계십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 구출과 해방과 은총과 사랑과 대신 죽으심을

남기고 가셨기에 인류와 함께 장수 영생하십니다 .

이 세상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 서서, 저는 결론을 얻습니다. "나눔은 덕이 아니고 생명의 의무"라고

"내가 성가원을 운영하는 것은 선행을 닦는 것이 아니고 빛을 갚는 것"이고 "누군가 내

대신에 그 고통들을 짊어지어 내가 그 고통들에서 면제받았기에 아내와 엄마와 할머니와

대학교수 등의 자리에 앉았던 것"이라고.


로마의 까쁘딘느 수도원 해골경당에는 4500구의 해골로 사면 벽이 쌓여있고 거기 한 전신

해골이 천평칭 저울을 들고 있는데 그 저울 안에 해골 하나가 얹혀 있습니다. 그리고그 앞

팻말에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죽음이 오늘은 우리들

차례입니다. 나는 거기에 팻말 하나를 더 세우고 이렁게 써 넣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네 생명의 가치는 몇 근인가?" 라고. 인간은 죽습니다. 100년을 살아도더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깨 재생

부활하면서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성모님을 퉁하여

거듭 거듭 기도할 뿐입니다.


사회복지법인 나자렛 성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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