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여행)

바티칸 박물관

코람데오 요세비 2006. 7. 20. 21:26

바티칸 박물관은 강대국의 강탈 문화와 달리 줄리우스2세, 이노첸트8세, 식스투스 4세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교황들이 수집한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 600년간 전세계의 명작들을 수집하여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클레멘스 14세 때인 1773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본관은 "피오 클레멘티노미술관", "도서관", "성(聖)유물관", "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실은 "보르지아실"(室), "라파엘로실", "지도실"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미켈란젤로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성당", "파오리나성당", "니코로 5세 성당" 등도 박물관의 일부로 여기고있다. 박물관 입구는 안 보이지만 왼쪽에 있다.



복도 많지 평생에 갈까 말까한 박물관에 소풍을 오다니.

입구에서 표를 사고있는데 의미 심장한 십자가가...

저희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게 하소서.

무선 헤드폰을 사용,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성 베드로 성당 나올 때 반납.



삐냐 정원(Cortile della Pigna, "솔방울 정원")

4m 높이의 거대한 청동솔방울은 고대 로마의 분수 일부였으며 한때는 옛 성베드로 성당의 안뜰에 있었다. 대부분은 브라만테가 설계했으나 솔방울자리는 1562년 피로리고리오가 만들었다.


헤르메스 (Hermes)(다빈치가 더이상 나머지 부분을 만들지 않아도 완벽하다고 했다.)

산탄젤로 성 근처에서 발견된 이 조각은 B.C.4세기인 하드리아 시대의 그리스 청동상을 복사한 것이다. 1543년 바오로 3세 에 의해 벨베데레정원 소장품으로 추가되었다.

이 조각은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으며, 완벽한 인간의 육체적 균형미가 완벽하게 구현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헤르메스 ;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요람에서 빠져나와 아폴론 신의 소를 훔쳤는데, 이때 뒤를 밟히지 않도록 소의 꼬리를 끌고 뒷걸음질을 치게 할 정도의 지혜를 발휘했다고 한다. 또한 갓난아기이면서 거북을 잡자 그 귀갑에 양의 창자로 현을 매어서 하프를를 발명했다. 그 음색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아폴론은 하프를 얻는 대신 자기의 소를 훔친 것을 용서했다고 한다. 그 밖에 피리를 만들어 아폴론에게 주고 조약돌로 점치는 법을 익혔는데, 음악, 문자, 숫자, 천문, 체육, 올리브 재배법, 도량형을 만든 것도 헤르메스라고 한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자로서 활약하였으며, 사자(死者)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맡아 '영혼의 인도자'라는 의미의 "사이코포모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고대에 가장 친근한 신으로서 원래는 나그네의 수호신이었으나, 변론, 행운, 상업, 도둑, 운동경기의 신으로도 점차 확대되었다. 또한 다산과 풍요의 신이기도 하고, 여신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로마 신화의 머큐리(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된다.



벨베데레의 뜰("8각형의 뜰", The Octagonal court)

15세기 말 교황 인노첸트 8세의 지시로 브라만테(Bramante)가 만든 벨베데레(Belvedere)궁의 8각형 안뜰이다. 이 뜰의 주위에 전시된 조각상들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서양 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네로의 욕조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온 엄청난 큰 욕조로 자주색의 통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모자이크 욕조 바닥

네로의 욕조가 놓인 바닥은 오트리꼴리 욕장 유적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으로

색깔있는 대리석조각으로모자이크 한 것이다.


원형 전시관(Sala Rotonda)

로마 황제의 두상과 그리스, 로마의 신상들이 전시되어있다. 가운데 네로의 욕조가 놓여있다.




코스탄자의 석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딸이었던 코스탄자의 석관으로 외부에 포도 수확 장면이 새겨져 있다.


헬레나 석관

AD4세기 만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의 석관으로 외부에 전투 장면이 새겨져있다.

*헬레나 ; AD 250년 전후로 소아시아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측되며 명문의 집안이 아니었으나 그곳에 근무 중인 로마의 장교 콘스탄티오 클로루스의 눈에 들게 되어 그와 결혼하게 된다. 그녀가 나은 첫아들이 콘스탄티누스였고, 후에 헬레나는 왕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게되나 빈민을 구제하거나 함께 예식에 참여도 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AD326년에 성지순례를 가서 갈바리아 산상에 세워졌던 예수의 십자가를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그 대신 그곳에다 베누스 여신의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을 보고 여러 곳을 발굴한 끝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였다. 이 때문에 그녀의 문장은 십자가이다.




지도 겔러리 가는 곳, 모든 것이 예술 작품입니다.



지도 갤러리

16세기말에 무씨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3년에 걸쳐 이탈리아 전역을 그려 놓은 것이다. 120m에 걸쳐 긴 복도에 전시되있는데 16세기의 역사 기록과 지도 작성법을 볼 수 있다.

고대와 현대의 이탈리아 모습을 1580년의 프레스코로 그려져있다. 현재 인공위성으로 그린 지도와 거의 오차가 없을 만큼 정밀하고 정확하다고 한다.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는 공식적으로 순결한 임신 교리"( 성모마리아는 원죄없이 태어난 유일한 인간이다)'를 발표하였다. 즉, 성모 마리아가 인간에서 신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지상 생애를 완성한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에로 승천하였음을 발표하였다. 비오 12세의 발표가 있기 수백년 전부터 교황들은 113명의 추기경, 2,500명의 주교, 32,000명의 사제와 수사들, 50,000명의 수녀들, 그리고 8백만 명의 평신도들이 마리아의 승천을 가톨릭 교회의 교리로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2두전차실에서 아라찌회랑으로 가는 복도의천장화는 완벽하게 원근법으로 묘사하여 마치

부조를 새겨놓은 것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 조각 같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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