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우리 어머니

코람데오 요세비 2006. 11. 21. 12:24

내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기도

내가 어렸을 때 잠에서 깨어나면 어머니는 촛불 아래 늘 기도 하고 계셨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그때에도 기도 하고 계셨다. 그 때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세월이 몇 해를 지나갔다.

나이를 들어 한 동안 냉담하고 있다가, 열심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모처럼 시골 어머니를 찾아뵙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이제 네 어머니 소원 풀었다.”나는 무슨 소리인가 하여 아버지께 다시 여쭈어 보았다.

“이십여 년 동안 널 위해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성취 되었단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 잠자리에서 들었던 기도가 바로 그 기도였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난 주님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 그리고 얼마 지나서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요즈음은 무슨 기도 하세요?”

“네 아들들 위해 기도한다.”

“공부 잘하라고요?”

“그래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좋은 대학가고..”

“어머니 요즈음은 하도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어 하느님이 그 많은 소원을 들어 주실 수 가 없대요. 하느님도 예전 같지가 않으시데요.” “그래도 기도 하면 좋지 않냐!”

이십여 년 날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이 놀랍다.


기도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김대건 신부님의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공소 회장님의 옥중 편지 중에 “세상 어떤 것을 도모 하기위한 기도라면 그 기도는 그만 두십시오. 오직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주님을 사랑 할 수 있도록 그런 기도만 해주십시오.”

고문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 해주십사 하고 기도하였는데 그것을 알고 회장님이 그 기도를 중지하라는 편지 한 구절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우리는 너무 육신의 안락만 위하여 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의 건강이나 우리의 가정을 위하여 또는 어떤 사람의 고통을 위하여.... 어떤 것을 도모하기 위한다는 것은 육신의 평안함만 강조 하는 것이 아닌지?...

우리가 교회에서나 세속에서 움직이고 말할 때 주님이 빠지거나 주님이 없는 말과 행동은 죽은 행동과 죽은 말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서초동에 살았는데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순박한 시골 옆집 아주머니 같아서 얼마 후에 친하게 지냈다. (친하게 지냈다고 해봐야 동네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지만.) 그 아주머니에게는 결혼한 아들이 있었다. 자연히 우리 안사람과의 화두는 고부간 갈등이다.

우리 안사람도 열심히 시집에 일을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칭찬보다 비난과 탓이다.

그 아주머니는 아무리 속이 상해도 며느리에게 아무 소리 안 한다고 했다. 음식을 잘 못해도 그려려니. 집안 청소가 잘 안 되어 있어도 그려려니.. 그렇게 지내신다고 했다. 속은 상하지만....


왜 아무소리 안 하느냐면, 그것은 그 아주머니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평소에 냉담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주 내용은 아들의 회두(냉담을 풀고)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주님 어떤 며느리가 들어와도 좋으니 우리 아들 성당에 열심히 나가게 해주십시오.”

살림을 못 해도 음식을 못 만들어도 좋으니 부디 어떤 며느리가 들어와 우리아들 성당에 열심히 나가게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져 아들이 열심히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새 며느리를 통해서, 그 후 아들은 전례부에 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며느리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현명한 생각은 나를 감동 시켰다.

생각하면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다. 이제 아들이 소원대로 되었으니 욕심을 채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며느리를 닦달을 하련만, 처음 약속대로 만족 한다고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아주머니처럼 감동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창세기 한 처음 우리를 사랑 하셔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셔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 비극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 후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 하시는 것과 같이, 처음과 끝이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일상의 편안함으로 인하여 어제의 좋은 것이 오늘은 싫은 변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애지중지 하는 소장품도 세월이 가면 싫증이 난다. 강아지도 장난감을 3개월 정도면 갖고 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우리 어머니의 사랑은 지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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