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합니다!
얼마 전에 먼 친족 조카뻘 되는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뜸 "내 아 를 낳아 도." 그리고는 달아나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한참이 지나서 이웃에 사는 젊은 아주머니가 왔다.
그 아이는 내게 했던 것처럼 "내 아 를 낳아 도." 그리곤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주머니는 황망해 하며 "이놈 날더러 네 아이를 낳으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일곱 살 된 아이가 왜 저 모양인가? 집에서 애를 어떻게 가르치길래....
나중에 안 일은 어느 텔레비젼 프로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경상도 말로 표현했는데 그 표현을 "내 아를 낳아도"였단다. 한편 어이가 없으면 서도, 한편 우습기도 하다.
허긴 사랑의 감정을 꼭 직설적으로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해야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살며시 손을 잡을 수 도 있겠고, 그저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바라만 볼 수 도 있겠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정한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만 봐도 사랑하는지 알 수 도 있겠다. 사랑한단 말을 듣고서야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은 분명 짝사랑 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가?
성서에 보면 사랑이란 구절이 709개나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1 3, 18)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 16)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 17)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페소 1, 6)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영원한 위로와 좋은 희망을 주십니다. 데살로니카 후 2, 16)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 4, 8)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요한1 4, 19)
그렇습니다. 토마스처럼 주님의 옆구리를 손으로 눌러보고야 믿는 우리는 너무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계산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득이 되면=YES, 득이 없으면=NO. "사랑은 그렇게 내게 다가 왔다." 라는 어느 과자 선전처럼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랑이 왔다. (과자를 팔려고 왔겠지.)
사랑은 팔장 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오지 않는다. 먼저 사랑해야 사랑이 오고,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사랑 준 만큼 사랑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을 알지 못한 다고 요한 복음1서에 있지 않습니까.
단원여러분 서로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내 아를 낳아 도." 그러진 맙시다. 안...농...
얼마 전에 먼 친족 조카뻘 되는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뜸 "내 아 를 낳아 도." 그리고는 달아나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한참이 지나서 이웃에 사는 젊은 아주머니가 왔다.
그 아이는 내게 했던 것처럼 "내 아 를 낳아 도." 그리곤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주머니는 황망해 하며 "이놈 날더러 네 아이를 낳으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일곱 살 된 아이가 왜 저 모양인가? 집에서 애를 어떻게 가르치길래....
나중에 안 일은 어느 텔레비젼 프로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경상도 말로 표현했는데 그 표현을 "내 아를 낳아도"였단다. 한편 어이가 없으면 서도, 한편 우습기도 하다.
허긴 사랑의 감정을 꼭 직설적으로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해야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살며시 손을 잡을 수 도 있겠고, 그저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바라만 볼 수 도 있겠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정한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만 봐도 사랑하는지 알 수 도 있겠다. 사랑한단 말을 듣고서야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은 분명 짝사랑 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가?
성서에 보면 사랑이란 구절이 709개나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1 3, 18)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 16)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 17)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페소 1, 6)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영원한 위로와 좋은 희망을 주십니다. 데살로니카 후 2, 16)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 4, 8)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요한1 4, 19)
그렇습니다. 토마스처럼 주님의 옆구리를 손으로 눌러보고야 믿는 우리는 너무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계산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득이 되면=YES, 득이 없으면=NO. "사랑은 그렇게 내게 다가 왔다." 라는 어느 과자 선전처럼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랑이 왔다. (과자를 팔려고 왔겠지.)
사랑은 팔장 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오지 않는다. 먼저 사랑해야 사랑이 오고,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사랑 준 만큼 사랑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을 알지 못한 다고 요한 복음1서에 있지 않습니까.
단원여러분 서로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내 아를 낳아 도." 그러진 맙시다. 안...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