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오 마더 데레사

코람데오 요세비 2007. 2. 17. 14:58

몽당연필

연필 사달라면 어머니는 이전에 쓰던 연필을 꼭 가져오라 시켰다. 짧아진 그 연필을 새끼손가락 틈에 끼워 그 길이를 견주어 손가락 보다 짧아야만 사주셨다.

그것은 세상 살면서 물심으로 욕심이 나고 샘이 나지 못하게 하려는 절제의 교육 차원에서 가르치셨던 것일 게다. 어느 중견 시인이 미당 서정주 선생을 찾아와 배고파서 시(詩)를 못 쓰겠다고 했다. 이에 선생은 “이 사람아, 배부른 사람 시(詩) 잘 쓴다는 말 동서고금에 들어 본 일이 없네. 몽당연필에 침을 칠해 꾸욱꾸욱 눌러써야 좋은 시(詩)가 나오는 거여.” 하였다 한다.

‘연필깍지’라는 북유럽지방에 동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눈먼 소녀가 병석에서 죽어 가는데 머리맡을 더듬어 손에 죈 것이 몽당연필이었다. 눈먼 소녀는 죽음에 쫓기어 그 몽당연필로 더디게 글씨를 써 나갔다. ‘A-V-E M-A'까지 쓰고 연필이 너무 짧아 쓰이질 않았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연필깍지를 소녀의 몽당연필에 끼워 주었고 소녀는 ’-R-I-A'까지 썼고 몽당연필은 생명이 빠져나간 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 세상에서 돌아보지 않는 가장 작고 하찮지만 세상 사람이 잊고 있는 가장 크고 소중한 뭣을 몽당연필이 대변했고, 성모 마리아가 촛불을 들고 그 소중한 것에 희미하게 비춰 주었다.

근간 마더 데레사 영화에서 그녀는 하느님 손아귀 속에 든 하나의 몽당연필이라고 자기 정의를 했다. 육체는 건포도처럼 깡말라 쓸모없어졌지만 애오라지 남은 심령만은 신이 들고 침을 칠해 눌러쓰면 써지는 그 몽당연필, 지금 각지에 끼인 채 신의 머리맡에 놓여 영원할 것이다.


사람들은 저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 부르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 분’ 손 안의 작고 보잘 것 없는 몽당연필일 뿐입니다. 쓰시는 분은 ‘그 분’이십니다.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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