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어느 자매님의 이야기

코람데오 요세비 2007. 1. 20. 16:48

오래 전에 들은 영세 받고 얼마 되지 않은 자매님 이야기입니다.

영세 후 매일 미사에도 참여 하였고 구역 반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반모임에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늦게 붙은 불이 날 새는지 모르는 법. 열심히 하였습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열심히 하면 축복(?)이 온다나... 곧 반장이 되었고 사명감을 갖고 온 정성을 다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구역장이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새 구역장을 뽑는 날 역시 밀어 내기 식으로 억지 구역장을 맡았지요. 이럴 때 사회에서는 관운이 좋다 라고 하지요. 짧은 시간에 반장 구역장을 한 것이지요. 이제 구역장이 되었으니 더 큰 포부를 갖고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나댄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서로 안한다고 떠 밀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너무 나댄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그래 진심은 그게 아닐 거야. 그러나 한두번도 아닌 비난은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때가 왔지요. 차마 들을 수 없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물러 설수 없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았습니다.

징검다리 건너듯 하나하나 소문의 진원지로 다가 갔습니다. 옛 말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이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친한 사람, 가장 잘 따르던 제자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였듯이 진원지는 자매님의 바로 이웃, 항상 주변에서 협력하고 도움을 많이 준 자매님이었습니다. 기절초풍이라 했던가. 너무 황당했지요.


바닷가의 파도는 한번 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밀려옵니다. 한번 두번 세번...

인간 세상살이에도 이와 같이 고난이 올 때에는 크고 작은 여러 것이 옵니다. 그러나 우둔한 인간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후해 해도 소용없지요. 이 고난을 뚫고 나아가느냐, 아니면 적당한 곳에서 포기 하느냐. 자매님은 돌파와 포기 보다는 교회 내에서의 그런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래 내가 그만두면 될 것 아녀!” 미사에 한번 빠지니 두 번 빠지게 되고 세 번 네 번 그렇게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기만 했습니다. 몇 달이 흘러 그래도 내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간다라며 미사에 참석 하였지만 차마 소속 본당엔 가지 못하고 이웃 성당으로 다녔지요. 당연히 소속감이 없으니 시계추 모양 왔다 갔다 핑계가 없어서 갔지요. 예전에는 성당일이 일 순위 그 다음 가정일 그 다음 다른 일... 지금은 다른 일하고 시간이 남으면 미사 참례하러 가는 천박한 신세가 되고 말았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고 생각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함과 허전함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성당으로 미사 참례 하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구세주를 만났듯이 반가워하며 마침 잘 만났네요. 지금 독서자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독서를 못하니 독서를 해달라면서 납치하듯 버스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안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지요. 졸지에 본당으로 왔습니다.

그 자매님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구역장이었고 열심히 하던 본당에 열혈 당원 같은 신자로만 알고 있었지요. 미사가 시작되고 봉독시간. 예전 같으면 막힘없이 쭈 우...욱나갔겠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 그리고 더 이상 봉독할 수 없었습니다. 봉독하는 순간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었지요. 한 없이 흐르는 눈물은 하느님 말씀까지도 적시고 있었습니다. 신부님도 차분히 기다려 주는 여유를 보여 주셨고 처음 웅성거리던 신자들도 봉독을 끝까지 기다려 주는 미덕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마치 초등학생이 처음 한글을 배워 읽는 수준이었지요. 그렇게 읽어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봉독과 묵상이 계속 이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근사한 표현이겠네요.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가끔 독서 할 때 이런 경험 있지요. 오늘 독서가 지금 현재의 내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듯이 할 때, 마치 하느님께서 나의 앞날을 내다보시고 이렇게 하라 하고 메시지를 주시는 것 같은 기분. 뭐라 형언 할 수 없는 감정.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영성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모송 해설  (0) 2007.02.17
베드로 바오로 특전 (혼인법)  (0) 2007.02.17
피정 장소  (0) 2006.12.16
한 풀이  (0) 2006.11.21
큰거 한장  (0) 200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