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향기

구원론(義化敎理)

코람데오 요세비 2006. 10. 30. 22:15

예전에 장희동 신부님이 설악산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 야 천국이 따로없네" 하니까 어떤 개신교 신자가 "천국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물론 나중에 이야기 하다보니 개신교 신자인걸 알았지만... 우리는 정말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까?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대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관해서 고심한 것을 많이 보았다. 지금은 구원이 쉬워서 관심이 없는것일까. 루터가 사제가 된것도 벼락치는 나무 밑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구나 라는 일생 일대의 고민에서 였다. 부모님은 변호사가 되는것이 소원이였는데... 그러면 구원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구원 받을까. 우리교회에서는 구원 받으려면 하느님을 믿으며 선행으로 덕을 쌓아야 한다고 알고 있다. 물론 어떤 교회에서는 하느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 라고 하지만...

그러면 구원론이 교회마다 다르게 해석된 이유를 알아보자.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튀링겐 지역 작센 공작령의 아이스레벤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루터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받았고, 부모로부터 법학을 권유하여 받았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오컴의 유명론에 영향을 받기 시작 하였다. 루터는 1505년 7월초 만스펠트에서 에르푸르트로 가던 도중 스토테른하임 근처에서 천둥번개에 놀라 마지막 성사도 받지 못하고 죽을까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성녀 안나에게 기도하였다.

결국 부모와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월 17일 에르푸르트에 있던 탁발수도회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 하였다.

루터는 수도생활중 심각한 영신적 갈등을 체험하였다. 당시 루터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구원’이었다. 수도원 생활이 구원을 실현 하는데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기도, 극기등 엄격한 수도회 규칙을 준수함으로 공로를 쌓으려 하였으나 그럴 때 마다 육욕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고 고통을 당하였다. 마침내 그는 수도규칙 엄수와 같은 인간의 노력과 선행으로는 완전한 의화(義化)와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루터는 자기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로 실의에 빠졌다. 루터는 이러한 번뇌의 해결책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장 17절에 나타난 ‘신의 정의’라는 단어는 그의 고민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는 이 정의를 죄인을 벌하는 신의 엄책으로 보았다. 여기서 루터는 그리스도교인에게 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정의의 신에게 분노하고, 신을 증오하는 독성죄를 범하기에 이르렀다.

루터는 영신적 번뇌와 신학적 고민에 벗어나기 위해 계속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비텐베르크 수도원 탑의 아랫방에서 이 성구를 묵상하며 기도 하던 어느 날, 마침내 그는 조명 또는 계시의 순간에 신의 정의를 수동적 의미로 발견 하였다. 루터는 신의 정의란 신이 인간을 신앙에 의해서 의화 시키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선행과 관계없이 신앙만으로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의화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그는 재생하였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루터의 탑실 체험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노의 저서와 독일의 신비주의, 오컴의 유명론과 성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다.

또한 이 체험은 신과의 직접적 접촉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신과의 실제적 만남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신의 개입의 결과로 나타나는 회심(回心)을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루터의 이러한 체험은 다른 이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그 근본은 가톨릭적 의미를 갖고 있다. (교리신학원의 세계 교회사 참조)

교황청 일치평의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교일치를 위해 노력 하고있으며 아래 기사는 조선일보의 기사이다.

“신·구교 500년 敎理논쟁 풀러왔죠”

한국에 온 ‘신학교과서의 저자’ 카스퍼 추기경
루터교·천주교 ‘구원의 조건’ 합의
감리교도 23일 공동선언 발표하기로

“천주교와 감리교의 ‘의화교리(義化敎理)에 관한 공동 선언문’ 발표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뜻 깊은 행사를 이곳 서울에서 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17일 회견장에 나온 교황청의 일치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73) 추기경은 흥분과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 출신인 그는 가톨릭 신학생들에게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함께 ‘교과서의 저자’로 익숙한 대신학자다. 신학생들은 1~2학년 때 베네딕토 16세의 ‘그리스도의 신앙, 어제와 오늘’을, 4학년 때 카스퍼 추기경의 ‘예수 그리스도론’을 배운다. 베네딕토 16세가 신앙교리성 장관을 역임하며 전통 수호적인 입장을 강조했다면, 카스퍼 추기경은 1994년부터 일치평의회에서 개신교계 등 다른 교단과의 일치 운동에 앞장서 왔다.

이번 방한은 신·구교 사이에 500년 묵은 ‘의화교리’ 논쟁의 한 고리를 풀기 위해서다. 카스퍼 추기경은 23일 서울 금란교회에서 열리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에서 감리교와 함께 공동선언문을 발표한다.

‘의화교리(개신교는 칭의론〈稱義論〉)’란 ‘인간의 구원은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를 놓고 16세기 종교개혁가 루터 이후 개신교와 천주교가 끊임없이 논쟁해온 핵심 사안. 천주교는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루터는 “신앙만으로 구원된다”는 입장이었다. 루터교와 천주교는 1999년 44개 조항의 공동선언문을 발표,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의화와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오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번 서울대회에선 또 다른 개신교단인 감리교가 이 공동선언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인임에도 카스퍼 추기경은 이날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 가며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고, 하나의 교회를 원하십니다. 개신교뿐 아니라, 동방교회 등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신앙을 확인하고, 같은 성사(聖事)를 거행하며, 주교직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것이 일치운동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일치 노력은 교회 내부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평화와 단합을 가져올 것”이라며 “루터교, 감리교뿐 아니라, 장로교를 비롯한 모든 교회를 일치 운동에 초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스퍼 추기경은 16~21일 경기 의왕 ‘아론의 집’에서 열리는 ‘교회일치를 위한 아시아 지역 주교 세미나’에 참석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한 후 24일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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