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학과표에는 신약성서의 3번째 서간문을 배우게 되어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바오로 서간 입문 해설이네요.
아마도 올해가 바오로 탄생 2000년, 바오로의 해에 맞추어 이 서간문을 배우게 된게 아닌가 하네요.
예전에 성경을 공부 하다가 바오로의 영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바오로 영성만 또 바오로의 전도여행 답사도 생각하고 있던 차에 8월 교제가 바오로의 서간문이라 내심 반가웠지요.
그런데 시작하자 마자 내가 알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네요.
6쪽 1)로마 교황 클레멘스(90/92~101년)의 고린토서간 5, 5-7에 서방 땅 끝(스페인)까지 가서 세도가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바오로는 가택 연금 후에(사도 28장 30절)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다음 로마로 돌아와서 순교했다.
교황 클레멘스의 고린토서간을 본적이 없지만 여기서 땅 끝을 스페인이라고 괄호를 치고 쓴 것을 보면 단지 땅 끝을 스페인이라고 단정한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많은 학자들간에 논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구요.
사실 그 시대의 지리학은 세계가 (인터내셔날)중근동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고 그 땅 끝이 스페인이 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리엔탈도 마찮가지 입니다. 성경을 한번 봅시다.
마르코복음서 13: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여기서 땅 끝을 스페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온 세상을 지칭할 때 쓰는 일반명사입니다.
성경을 또 봅시다.
로마서 15:24 그래서 내가 에스파냐로 갈 때 지나는 길에 여러분을 보고,
먼저 얼마 동안 여러분과 기쁨을 나누고 나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그곳으로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5:28 그래서 나는 이 일을 마치고 이 모금의 결실을 그들에게 확실히 전한 다음,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에스파냐로 떠나렵니다.
우리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지요.
그렇다면 에스파냐(스페인)로 갈 계획을 세운거는 확실합니다.
계획은 세웠지만 그 어디에도 스페인 전교에 대하여 남아있는 글이 없습니다.
단지 땅 끝까지 갔다. 그 땅 끝이 스페인이었던거지요. 그래서 종종 오역이 생기는거 같아요.
오히려 스페인은 야고보 성인의 전설이 많은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가 처음으로 천주교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로서,
왜군을 따라 조선에 와 종군한 스페인 예수회 소속 세스페데스(cespedes,g.) 신부가 그였다.
생 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한 지 35일 만이다. 5㎞만 가면 800㎞ 여정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인 여행시기를 예수님의 죽음 이후,
야고보의 순교 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울로의 말씀(로마 15:20-24)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 레오 13세가 칙사(Omnipotens Deus, 1884)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사도 야고보의 생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3대 성지의 하나로 로마, 예루살렘과 견줄 수 있게 되자,
한때는 산티아고 순례가 열광적으로 성행하기도 했다.
9세기 초 수도사 페라요가 사도 성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로마 교황 칼릭스투스 2세가 집필했다는 옛 문서에 따르면, 어느날 밤 카를 대제의 꿈에 성야고보가 나타나
“사도의 무덤을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군을 이끄는 카를 대제를 빛나는 하늘의 강이 까마득히 먼 갈리시아로 인도하리라.
그것은 바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도 성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에 묻혔다는 설은 이런 전설에 근거한 것이다.
성야고보는 로마 제국의 속주인 히스파니아에서 포교하려고 애썼으나 성과가 없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명으로 목이 잘려 순교(세베대의 아들 야고보)했다.
몇 명의 신도들이 사도의 유해가 담긴 돌널을 해변까지 나르자,
천사가 양옆을 붙잡고 있는 배가 나타나 그 널을 실었다고 한다.
그 배는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나아갔고, 로마 시대에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이리아프라비아에 닿았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동안에도 성야고보는 연어떼를 향해 설교했다고 한다.
성마르코가 베네치아에 부를 주고, 성안드레아가 비잔틴의 위엄을 상징하듯이,
성야고보는 당시 이슬람 세계와 접하고 있던 변경 지방 갈리시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당시 갈리시아는 레콩키스타의 열기가 고양되던 곳이기도 해서, 이 수호성인은 언제나 싸움터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크라비오 전투에서 사도 성야고보가 백마 탄 전사 모습으로 나타나 칼을 휘둘러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으며, 공격해오는 이슬람교도 앞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자 사기가 오른 그리스도교도 군대는 죽음도 아랑곳없이 “산티아고! 돌격! 에스파냐!”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돌격해 승리했다고 한다. 이런 고사 때문에 성야고보에게는 ‘마타모로스(무어인을 죽이는 자란 뜻)’
라는 별명이 붙었고,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현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시청으로 쓰고 있는 라호이 궁전에 성야고보의 기마상이 놓이게 되었다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습니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스페인)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에스파냐(스페인)의 수호성인입니다.
전숭에 의하면 야고보 성인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복음을 전하고자 두 명의 제자를 데리고 스페인으로 옵니다. 약 3년간의 선교활동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결국 헤로데왕에 의해 순교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돌로 만든 배에 실어 바다로 띄어 보내는데, 이 배가 스페인 북서쪽 파르돈이라는 곳까지 흘러왔다고 합니다.(전설에의하면 배에는 선원도, 돛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시신을 거두어 산티아고에 매장하게 됩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 야고보’를 뜻합니다.
'영성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로교 교파 (0) | 2008.09.11 |
|---|---|
| 광복절과 성모님 (0) | 2008.08.16 |
| 묵주의 9일기도 (0) | 2008.06.13 |
| 마틴 루터 95 조문 (0) | 2008.05.25 |
| 에페소서에서 완전무장을 갖춘 하느님의 무기 (0) | 2008.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