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춘분이 지나고 만월 그 다음 첫주일로 정한 것은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은 당시 태양력과 태음력을 함께 사용했다.
유월절은 (과월절)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유대인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각 가정의 장남을 모두 죽일 때 그 표지가 있는 집은 지나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유월절은 하느님 은혜의 표징 민족의 해방일이 되었다.
유월절에는 니산달 (히브리력의 1월 현재의 3월 4월) 10일에 처음 난 어린 양을 골라 두었다가
14일 밤에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서 먹었다.
이튿날인 15일부터는 1주일을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절기로 지킨다
(《출애》 12장, 《레위》 23장, 《민수》 9장, 《신명》 16장).유월절 어린 양은 인류를 죄에서 구하고,
참 자유를 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예루살렘 성내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고,
이것이최후의 만찬이 되었다. 예수를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보활절을 정한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1958년 10월 20일 발행
상해천주교 교리중
윤형중 저 지킬계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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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바스카절) 폐지문제(125~126페이지)
성 「빅톨」 교황(재직 189~199) 때 예수 부활 축일을 소 아세아 각지 교회에서는 유대인의 바스카절 즉 닛산월 14일에 수난정사(受難丁死)를 기념하고 나서 동 16일에 지내고 로마에서는 동월 14일 다음에 드는 주일에 지내었다. 지금처럼 부활축일을 춘분(3월 21일) 다음에 드는 만월(滿月) 후 첫주일에 지내기로 되기는 325년의 니케아(Nic-aea)공의회(公議會)에서 결의된 다음의 일이다. 교황 「빅톨」은 카톨릭 의식의 일치와 유대인 절일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소 아세아 모든 주교에게 로마의 지키는 절일에 따르기를 요구하매 모두 이에 복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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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2월 일 발행책 교회력 김동수(金東銖) 著 (59페이지)
바스카 즉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던 교회는 325년 니케아 회의서 폐지되고 말았다.
이렇게 바스카와 부활절을 한 절기로 1주간에 지켜오게 된 기독교회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교회의 정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밖으로 이교사회와 그 문학철학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안으로 신앙고백의 형성직제의 편성(사교사제조제)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력도 꾸며지게 된 것이다. 이 때에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스터 논쟁(Easter Controversy)이다. 이 후에 합쳐서 지키던 바스카와 부활절을 둘로 나누게 되었다.
원래 바스카 Pascha Stairovimon, Pascha Cenastasimon으로 나누어 전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금요일, 후자는 생명의 기쁨이 넘친 부활주일로 지켰다. 그후 역서문제(유대력-태양력) 등으로 부활절의 논쟁은 325년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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